12월 이달의 출판만화
어스시의 마법사
글그림 프레드 포드햄 | 책과콩나무
선정평
"세상의 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바꾸려면, 세상을 바꿔야한다." 이 말은 〈어스시의 마법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다. earthsea- 세상을 구성하는 섬 이라는 설정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한다. 마법의 근본에 접근한 초보 마법사 소년 게드가 마법의 세계에 입문하면서부터 겪고 배우는 모든 비밀과 위기와 지혜- 그리고 자신이 가야할 마법사의 길을 완숙할 때까지의 이야기로 작가 어슐러 K 르귄 의 모든 판타지 작품세계를 망라한 듯한 작품이 바로 〈어스시의 마법사〉 이다. 워낙에 내가 좋아해서 내 작품세계에도 많은 영감을 준 작가이기도 하다. 작가 프레드 도드햄의 그림도 아주 빼어나다. 어둡고 거친 듯한 그러나 아름다운 느낌. 만화 어스시의 마법사는, 솔직히 만화라기 보다는 화가가 그린 그림 이야기를 만화형태로 묶은 것 같다는 느낌이다. 단지, 솔직히 내가 어슐러 K 르긘 의 작품 세계와는 색감, 표현, 느낌 모든 것이 동떨어져 있어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편견을 버리고 감상하니 같은 작품으로 이렇게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나 오히려 이래서 만화의 세계는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싶다. 단지, 이 작품은 영구소장용 작품이다. 하루 아침에 읽고 던져둘 작품은 아니다. 오래오래 두고, 보고 또 보고 하실 분에게 딱 좋은 작품으로 추천드린다.
- 신일숙 추천위원(만화가)
12월 이달의 출판만화
안경을 쓴 가을
글그림 이윤희 | 창비
선정평
마음이 추운 계절에 처방하기 좋은, 더할 나위 없는 가을-겨울 만화다. 많이들 나 혼자 산다지만 사실 사람은 대개 함께가 아니면 외롭다. 우리에게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 반려생물이 필요하고, 또 그런 만화가 더 필요한 이유. 자유분방한 손맛과 디지털의 깔끔함을 더한 특유의 스타일을 보여준 이윤희 작가의 데뷔작자 개정판이다. 공들여 곳곳을 수정해 재출간된 만큼, 물성을 가진 출판물의 종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텍스처의 맛이 참 좋다. 모바일 디바이스가 아닌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페이지만화의 연출과 형식미도 참 탁월하다. 절제된 선과 색을 사용해서 낮과 밤, 날씨, 계절의 온도나 빛을 표현하고 곳곳에 배어있는 감정선을 풍부하게 포착하는 솜씨가 경이롭다. 섬세한 배경에 비해 툭툭 던지듯 그린 익살맞은 캐릭터 디자인은 또 어찌나 정겹고 사랑스러운지. 위로와 사색, 가족과 일상, 문득 떠나고 싶은 여행과 언제든 돌아와 안기고 싶은 집을 갈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 최인수 추천위원(하마탱, 만화가)
11월 이달의 출판만화
오무라이스 잼잼 The Best 1~2권 세트
글그림 조경규 | 송송책방
선정평
조경규 작가의 만화를 보면, 경건한 쾌락주의자의 삶이 떠오른다. 그에게 먹는 일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삶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본래 디자이너로 출발한 그는 '만화가'라는 이름에 구속되지 않는다. 그림은 단정하고, 서사는 담백하다. 절제된 선과 여백 속에는 삶을 오래 바라본 사람의 깊이와 유머, 그리고 쉽게 칼을 휘두르지 않는 고수의 품격이 스며 있다. 〈오므라이스잼잼 the best〉는 그가 쌓아온 세계의 결정판이다. 유머와 통찰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그의 만화는 '먹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임을 일깨운다. 삶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 그의 만화를 한 권 펼쳐보자.
- 권혁주 추천위원(만화가)
11월 이달의 출판만화
날개 연대기
글그림 박인주 | 타이피스트
선정평
'페미니즘, 여자들의 이야기가 지겹다'는 말은 흔히 남성의 목소리로 상상된다. 그러나 불경스러운 마음에 숨기고 살았던 사실을 고백하자면, 여자들이야말로 여자의 이야기가 지겹다. 여자들에게 여자의 이야기는 3인칭인 동시에 2인칭이며, 당연히 1인칭으로도 경험되기 때문이다. 차별과 폭력에 관한 이야기 하나가 세상에 나올 때, 여자들은 비슷한 이야기를 수백, 수천 번 겪고 들은 상태다. 그러니 여자야말로 여자의 이야기를 진부하고 무심히 듣기 얼마나 좋은 처지일까. 이런 부당한 엄격함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작품이 〈날개 연대기〉다. 여자만이 날개를 가진 세상이라는 설정 속에서 예술가, 환자, 친구, 엄마, 할머니의 얼굴로 여자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익히 알고 있는 여자의 그 현실들이 신화를 연상케 하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작화로 인해 새로이, 거듭 읽힌다. 그 힘에 놀랐고, 박인주 작가가 그리는 또 다른 여자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 최윤주 추천위원(만화평론가)
10월 이달의 출판만화
일론 머스크
글그림 대릴 커닝엄 | 이숲
선정평
"기억하세요, 억만장자는 우리의 친구가 아닙니다." 프랑스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출판되는 〈일론 머스크〉 한국판에 동봉된 작가 대릴 커닝엄의 카드 메시지다. 전 세계 금융 위기를 다뤘던 전작 〈수퍼크래시〉에서 보수 우파가 경제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 해온 과정을 추적했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일론 머스크라는 문제적 인물의 개인사를 서술하는 동시에 그의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여러 조건들을 비판적으로 따져 묻는다. 스페이스X 등 머스크의 비전은 실제로 종종 눈부셨고, 많은 이들은 스티브 잡스 사후 머스크가 우리를 멋진 미래로 이끌어주리라 믿어 왔다. 하지만 또한 그 비전 상당수는 억만장자의 허세였으며, 그 허세로 모은 투자금은 인류의 미래가 아닌 머스크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러니 그가 트럼프와 영합한 현재만을 비판하고 배신감을 느끼는 건 온당치 않다. 이 책이 유의미한 계몽서인 건, 머스크에 대한 환상을 깨서만이 아니라 슈퍼리치와 빅테크 천재들에 대한 대중의 동경과 시장주의에 대한 낙관이 어떻게 머스크 같은 인간을 성공시키고 민주주의를 약화하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머스크가 아닌 좋은 억만장자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이 우리의 친구일 수는 없다.
- 위근우 추천위원(칼럼리스트)
10월 이달의 출판만화
북극백화점의 안내원 1
글그림 니시무라 츠치카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선정평
우린 공공으로 이용하는 많은 공간이 항상 깔끔하고, 쾌적하고 불편하지 않은 것에 쉬운 보편감을 가질 때가 있다. 마찬가지로 어떤 서비스를 받을 때 전해받는 친절함에 너무나도 당연한 태도를 보이고 조금만 불편하면 불쾌감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린 서비스업 종사자 누군가에겐 풀기 어려운 답답한 수학 문제같은 사람이 되곤 한다. 이번에 추천하는 〈북극 백화점〉은 그런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속마음과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일본 서비스업 종사자의 태도에 가깝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도 365일 어디선가 나를 응대하는 서비스업 종사자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이 작품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무해하기도 하다. 그래서 점점 추워지는 겨울 두고 마음을 따뜻하게 밝히기엔 너무 좋은 작품이라 생각했다.
- 성인수 추천위원(만화기획자)
9월 이달의 출판만화
고랭순대 작품집 1
글그림 고랭순대 | 대원씨아이(만화)
선정평
고랭순대 작가의 단편만화들은 짧지만 예측을 불허하고, 독자의 간담을 어루만지는 촉감이 서늘하다. 그림판으로 그린 듯한 만화체와 귀여운 표정의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인간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본성을 블랙미러처럼 드러낸다. 만화 한 칸 한 칸을 넘길 때마다 예감은 빗나가고 기대와 긴장이 교차한다. 불이 켜져 있고, 커튼이 열린 듯하지만, 어느새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불은 꺼져 있고, 커튼은 닫혀 있다. 고랭순대 작가 만화를 알고 있었다면 가을밤에 마음을 단단히 하고 다시 읽어보자. 또한 고랭순대 작가를 몰랐다면 이 만화의 '뒤늦은 독자'가 되어보자. 그리고 모두가 안녕하길 바란다. 〈오늘도 안녕, 내일도 안녕, 그리고 그 다음날도〉
- 신명환 추천위원(만화가, 전시기획자)
9월 이달의 출판만화
파인 1~3권 전권 세트
글그림 윤태호 | 더오리진
선정평
윤태호 작가의 작품엔 물속에 잠긴 듯한 특유의 느낌이 있다. 미생에서 공기가 물 같이 살짝 무거운 느낌이라면, 파인은 그 물속 바닥을 훑는 듯한 느낌이다. 살짝 훑는 바닥을 따라 바닥먼지가 스물스물 퍼져올라가는 가운데 오래 퇴적되어 숨겨져 있던 여러 가지가 적나라하게 보게되는 그런 느낌... 1970년대 '신안 보물선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파인〉에는 그 시대 그 동네에 있었을 법한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실제 지역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처럼 생생한 사투리를 너무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캐릭터들이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 한편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도굴꾼들이 추구하는 생존방식의 차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전개가 휘몰아친다. 자기 욕망에 한없이 충실한 자들의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연의 모습- 책 읽는 동안은 마치 타임슬립한 것처럼 그 시대로 자연히 빠져드는 감각이라 작가역량뿐 아니라, 취재역량 또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최근 화제인 OTT 드라마 '파인'과 차별되는 원작만의 깊이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 윤태호 작가의 원작 〈파인〉을 꼭 한번 읽어보실 것을 권한다.
- 신일숙 추천위원(만화가)
8월 이달의 출판만화
쿠로와 함께한 여름
글그림 하토 | 문학동네
선정평
반려 동물과의 이별에 관해서는 늘 〈개를 기르다〉(다니구치 지로)를 추천하곤 했다. 개의 죽음을 테마로 해 사람과 개가 서로를 떠나보내는 시간을 처절하도록 현실적으로 담은 작품이다.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지도 20년이 지났건만 이별을 이만큼 구체적으로 녹인 작품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쿠로와 함께한 여름〉을 추천할 수 있게 되었다. 하토 작가는 동시대 한국에서 죽어가는 개와 함께 산다는 것의 아픈 부분들을 더 세세히 담아냈다. 후회와 자책, 가족 간 온도차, 안락사 고민, 펫로스 증후군 그리고 경제적 고민까지, 한 권 안에서 그저 이별로 요약되지 않을 경험이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현실적 이야기의 아름다움이 빛난다. 모든 구체성 속에 절대 일방향이지 않은 신뢰와 애착이, 책임감을 넘어선 실천이 절절히 박혀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모든 반려 동물 동반자가 읽으면 좋겠다. 생생한 현실의 재현이 줄 수 있는 위로를, 또한 용기와 사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조익상 추천위원(만화평론가)
8월 이달의 출판만화
나의 열두 살에게
글그림 소복이 | 나무의말
선정평
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드라마틱한 평범함"이라고 할까.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열두 살 아이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들끓는 감정을 우리는 이미 누구나 겪었으면서도 쉽게 잊는다. 이 마음이 사랑일까 고민하고, 서로 거슬려하면서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가족들 사이에서 진동하며, 상상하기 어려운 미래를 상상하던 그때.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읽는 과정은 잊었던 열두살의 나를 불러오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제는 산전수전 다 겪어 인생이라면 환히 아는 듯 피식피식 웃으면서 읽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마 당신도 다 읽고 나면 결국 작가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리라. "여전히 열두살입니다"
- 박사 추천위원(북칼럼리스트)
7월 이달의 출판만화
오키나와
글그림 히가 스스무 | 서해문집
선정평
오키나와에서 태어나 지금도 오키나와에서 생활하는 작가가 전시, 전후 오키나와 사람들의 삶을 그렸다. 작가는 "오키나와를 그리고 쓴다는 것은 세계와 연결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오키나와의 비극은 우크라이나, 타이완, 중동 등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전히 사라진 오키나와의 문화와 언어를 붙들어 정직한 그림으로 진실을 칸 안에 담았다.
- 박인하 추천위원(만화평론가)
7월 이달의 출판만화
[세트] 김달 단편집 1~2 세트 - 전2권
글그림 김달 | 문학동네
선정평
김달 작가의 그림체는 『여자 제갈량』 시절의 동글동글하고 간결한 스타일에서 『김달 단편집』에서는 더욱 단단하고 날이 선 연출로 발전했다. 10년간의 작가적 성장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가 정의한 "순정만화는 지저분하지 않기로 합의된 장르, 개그는 고통을 무자비하게 다뤄 웃음을 주는 장르"라는 기준이 작품에 잘 구현되어 있다. 다양한 주제를 날것의 감정으로 순정개그만화로 승화시켰다. 진지함과 유쾌함을 동시에 갖춘 서사 능력이 부럽고, '김달'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장르처럼 느껴진다.
- 권혁주 추천위원(만화가)
6월 이달의 출판만화
스테이시 Stacy
글그림 지피 | 북레시피
선정평
우선, 출판사 책 소개와 옮긴이 해제에서도 강조하는 캔슬 컬쳐라는 키워드로 이 작품을 정의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음을 밝힌다. 인기 시나리오 작가 지아니가 인터뷰에서의 말실수로 소위 '나락 간'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스테이시〉는 예술적 상상력에 관대하지 못한 '불편러'들 때문에 죄 없는 예술가의 평온한 일상이 붕괴한 이야기가 아니다. 지아니가 경험한 사건은 평온의 붕괴가 아닌, 평온하다 믿던 순간들에 이미 내재하던 기만을 인식하는 계기에 가깝다. 작품이 묘사하는 지아니의 내적 분열은, 캔슬 컬쳐 이전에 매스미디어를 통해 대중과 접하고 자기 삶을 재화 삼아 유명세를 얻는 과정에서 벌어진다. 정말 무서운 건 대중의 존경이 경멸로 바뀌는 캔슬 컬쳐가 아니다. 애초에 이상적인 자신을 연기하며 대중에게 존경을 받았기에 연기 중 한 번의 NG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무서운 진실이다. 나는 언제부터 나일 수 없었으며 그 타협은 언제 벌어졌는지에 대한 통렬한 자기 인식이야말로, 역시 자유롭지 못한 현대 독자들을 향한 〈스테이시〉의 서늘한 메시지다.
- 위근우 추천위원(칼럼리스트)
6월 이달의 출판만화
돈덴
글그림 만리포 | 문학동네
선정평
연출은 사변적이고, 그에 따라 그림체가 춤을 추듯 미려하게 옷을 바꿔 입는다. 때론 진중하고 때론 당돌하게, 그러나 대체로 슥슥 발라내 듯 투명하고 맑게 흐른다. 말과 글도 그렇다. 공들여 연습한, 즉흥적인 춤을 읽는 느낌이다. 정돈된 서사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마치 감각적이고 스타일리시한, 한 편의 긴 시를 읽는 느낌이다. 마조히스트의 기운이 넘치는, 가장 진실한 내면의, 여자의, '내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다. 상대를 통제하려는 욕구에서 기인하는 '분노'라는 가장 날 것의 감정을, 오로지 내 통제와 나의 '희'로 삼아 받아낼 수 있다는 것. 다른 사람을 신뢰하고 무방비해지는 것. "일시적인 역할극 안에서 누군가를 신뢰하고 내맡기는 행위에는 사람을 치유하는 면이 있다"는 말처럼, 멈춰! 하면 멈추는, 신뢰가 보답받는 경험. 부록인 만리포, 이자혜 작가의 대담은 본편의 만화 만큼이나 흥미롭고 충만하다. 여자를 알아도, 여자를 몰라도, 여자여도, 아니여도 흥미롭게 다가설 수 있는 만화다. 외롭고 어설프고 예쁜 희로애락이다.
- 최인수 추천위원(하마탱, 만화가)
5월 이달의 출판만화
최후의 바키타
글 위고 클레망 / 그림 도미니크 메르무, 뱅상 라발레크 | 메멘토
선정평
바키타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돌고래로, 웃는 듯한 얼굴 때문에 "바다의 판다"라는 별명이 있다고 한다. 귀여움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주장이 맞다면 푸바오급의 사랑을 받아야 할 듯 한데, 불법으로 설치된 어망에 걸려 의미없는 죽음을 거듭한 끝에 현재 기껏해야 열 세마리, 혹은 열마리 정도밖에는 남아있지 않다고. 이 작품에서 바키타는 최후를 향해 달려가는 지구를 상징한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위고 클레망이 쓰고 앙굴렘, 로잔, 시에르 국제 만화 페스티벌에서 신인작가상을 수상한 만화가 도미니크 메르무가 그린 이 책은 르포의 생생함과 힘을 그대로 담고 있다. 실제 현장의 풍경과 현장운동가와 범죄조직까지 아우르는 인터뷰를 인상적인 그림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장하지 않고 참혹함을 전달하다가 적절한 순간에 상상을 가미한 그림은 영상의 시대에 만화가 가진 힘을 생각하게 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즈음엔, 이미 내가"이 싸움에서 우리는 함께 이기든가 함께 패배할 것이다"의 우리에 이미 속해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 박사 추천위원(북칼럼리스트)
5월 이달의 출판만화
(락)이
글그림 마영신 | 송송책방
선정평
마영신 작가의 신작 장편만화 〈(락)이〉는 사람들이 락 음악을 듣지 못하는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학생 현숙은 남자친구에게 차인 후 이명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 후, 놀이터에서 버스킹을 하던 기타 연주자 제브라에게 '연주 잘 들었다'고 인사했더니, 그가 물었다. "이 소리가 들려?" 제브라는 중학생 시절, 우연히 아무도 듣지 못하는 락을 들은 후 기타를 시작했다. 언젠가 누군가는 들어줄 거라는 희망으로 사람 많은 공원에서 연주를 이어가던 중, 현숙이 다가와 연주를 들었다고 말한 것이다. 〈(락)이〉는 아무도 듣지 못하고, 누구도 알아보지 않더라도 꿋꿋이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과 생각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메신저다. 이 만화를 읽는 동안 당신도 ( ) 안에 숨겨두었던 무언가를 다시 떠올리게 될 것이다.
- 신명환 추천위원(만화가, 전시기획자)
4월 이달의 출판만화
해변의 스토브
글그림 오시로 고가니 | 문학동네
선정평
무생물과 소통할 가능성을 이야기로 만들 정도로 극도로 예민한 감성을 가진 작가가 무덤덤하게 전하는 단편만화집.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거나, 언젠가 헤어질 것이 분명하거나, 헤어지는 과정이거나, 헤어질 계획이 없던 간에, 각각의 단편 속 주인공들이 느끼는 건 한 가지로 수렴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가장 사랑해야 하는 건 '나'라는 것.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선행돼야 할 것은 '나'를 아는 것. 이것을 깨닫는 과정에서 사람마다 아픔은 다르게 표출되지만 나를 알지 못하고, 나를 사랑하지 않았을 때 상흔이 더 깊게 남는 건 공통적이다. 비록 스미오와 엣짱의 사랑은 끝났지만 스토브가 영원히 기억하겠단 약속처럼,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가 감정의 파도를 무한히 일으키며 예리하게 파고든다.
- 홍난지 추천위원(만화평론가)
4월 이달의 출판만화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 2
글그림 산호 | 고블
선정평
불타는 숲을 속절없이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시간. 우리는 비관적인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산호 작가의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속 세상은 우리가 무의식중에 상상한 세계를 닮았다. 무화가 나무가 폭염에 타들어가고, 폭염을 견뎌도 폭우가 쓸어내려가는 세상이다. 이 세상의 변두리에는 마녀들이 산다. 자연의 일부로, 연결되어 살아가는 마녀들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불타는 숲처럼 마녀들은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 마녀들의 세계는 불타버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적어도 산호 작가의 세계는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전 2권으로 완결된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에서 만나는 세계는 여전히 아름답다. 산호 작가의 세계 너머, 이제는 우리의 차례가 온다.
- 이재민 추천위원(만화평론가)
3월 이달의 출판만화
어쨌든 예술하고 삽니다
글그림 또몽 | 학고재
선정평
10대 시절 그림을 그린다는 공통분모로 엮인 또몽, 연생, 지화가 40대에 들어서기까지 각자가 부딪힌 삶의 문제를 따라 가면서 어쩐지 내 삶을 위로해주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뜨거워진다. 샤갈처럼 뜨겁고 프리다칼로처럼 강렬한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어도, 바라고 꿈꾸던 삶과 현실과의 괴리가 클지라도 여전히 그림을 그리며 정면돌파하는 세 친구의 이야기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도 그렇다"며 위로를 건네고, 유머러스하게 돌파할 수 있는 희망을 준다.
- 홍난지 추천위원(만화평론가)
3월 이달의 출판만화
에도의 장인들 1 - 간다 고쿠라초 이야기
글그림 사카우에 아키히토 | 문학동네
선정평
인공지능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공포가 삶 속에 묻어나는 시대. 사람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의 가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에도의 장인 - 간다 고쿠라초 이야기〉는 오히려 사람의 손을 거쳤기 때문에 생기는 가치를, 직접 작가가 경험하며 재현해낸 작품이다. 과거를 꼼꼼하게 재현하고, '손으로 만드는 일'의 본질에 대해 간결하게 이야기하면서 '일본적'인 것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실험적인 만화잡지 〈토치〉가 찾아낸 작품이다.
- 박인하 추천위원(만화평론가)
2월 이달의 출판만화
복숭아 씨를 깨물면
글그림 리 라이 | 프시케의숲
선정평
2021년에 출간한 리 라이의 데뷔작. 어디에나 넘쳐나는 '정상가족' 서사에 대한 비판을 위해 흔히 진정한 행복이 정상가족 바깥에 존재한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둘 다 완전한 진실은 아니다. 행복은 상태가 아니라 순간이며, 좋든 싫든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가족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가족은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진심을 내보이기 어렵다. 작가는 그래서 가장 이해받기 어려운 가족과 소통하는 고통을 그려냈다. 〈복숭아 씨를 깨물면〉은 그 과정에서 가족에게서 출발해, '나'를 내가 이해하고, 타인에게서 이해받을 때 찾아오는 '행복의 순간'을 포착해낸 수작이다.
- 이재민 추천위원(만화평론가)
2월 이달의 출판만화
너와 우주를 걷기 위하여 1, 2권
글그림 도로노다 이누히코 | 학산문화사
선정평
〈너와 우주를 걷기 위하여〉에는 요령 없이 올곧은 인물들만 나온다. 연출과 대사 또한 투박하고 직접적이다. 좋게 말하면 정직하고 거리를 두고 보면 작위적이다. 그러나 어떤 만화는 이렇게도 연극 같다. 이야기를 빚고 주제를 전하기 위해 동원되는 몸짓과 억양이 한껏 과장됐을지라도 막이 내릴 때까지는 속아주자는 약속으로부터 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약속에 기대, 작품은 용기를 내어 떨리는 목소리로 전한다. 우리 모두에겐 각자의 속도가 있다고. 그 속도로 기어코 더 나아갈 수 있다고.
- 최윤주 추천위원(만화평론가)
1월 이달의 출판만화
제11호 태풍 힌남노
글그림 이종철 | 보리
선정평
〈제11호 태풍 힌남노〉 작가는 〈까대기〉, 〈제철동 사람들〉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한 힘을 보여줬다면, 이번 〈제11호 태풍 힌남노〉를 통해 태풍이라는 자연재해가 지나간 자리에 살아남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소비하는 뉴스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사라져도 삶은 계속되며, 그 후유증은 계속되는 삶의 희노애락에 늘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작가의 무해한 언어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늘 발생하는 자연재해가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 가지는 의미가 충분히 있다.
- 성인수 추천위원(만화기획자)
1월 이달의 출판만화
별무리 가족(상/하)
글그림 포로야마 아키 | 미우(대원씨아이)
선정평
자격 없는 부모가 많다'는 말이 낯설지 않다. 그렇다면 부모가 될 자격을 심사하는 사회가 있다면, 그 사회의 아이들은 고통받지 않을 수 있을까? 아주 희박한 확률로 그럴 수는 있겠다. 자격이 잘 정의되고 심사가 공정하다고 가정한다면, 그리고 심사 결과가 사회에 부정적 여파를 미치지 않는다면. 그만큼 어려운 제도적 가설인데, 〈별무리 가족〉은 이 안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스포일러를 에두르자면, 어슐러 K.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과 닮은 육중한 질문이다. 게다가 빛나는 답으로 여운 남는 마침표까지 찍는다. 최근 읽은 SF 중 단연 돋보인다.
- 조익상 추천위원(만화평론가)